문장의 제국

    정치인 이회창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까이서 직접 본 건 대학교 2학년이던 1995년의 일이다.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그는 아마도 ‘리더십’을 주제로 모교에서 특강을 가졌던 것 같다. 93년 말 감사원장에서 총리로 수직상승한 이회창이 이듬해 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사표를 던진 건 당시만 해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80년대 대법관 시절부터 그에게 붙어다닌 ‘대쪽’ 이미지가 한층 공고해진 게 바로 이때다. 돌이켜보면 95년만 해도 이회창은 야당의 영입 대상 ‘0순위’였다. 김대중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김영삼과 그가 이끄는 민자당(현 한나라당)에 대적할 만한 정치인이 도무지 없다고 여겨지던 시절 ‘대쪽’은 아주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회창은 김영삼의 후계자가 되는 길을 택해 많은 이를 놀라게 하고 또 실망시켰지만….


    오늘날 ‘정치인 이회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나 ‘법조인 이회창’, 특히 ‘대법관 이회창’은 여전히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사법부 최고위직을 지낸 이들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회창이 93년 김영삼 정부의 권유를 받고 사법부에서 행정부로 자리를 옮긴 게 애석하게 느껴진다. 그가 감사원장 자리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대법관으로 남았다면 훗날 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에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회창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대신 대법원장이 됐다면 한국 현대사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는 가까운 기자들에게 “대법원장이 꼭 한 번 되고 싶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법조인 시절 이회창의 ‘트레이드 마크’는 누가 뭐래도 소수의견, 그리고 사법적극주의다. 그는 계엄법 사건, 국가모독죄 사건처럼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형사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권리를 옹호하는 용기있는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81년 대법관에 오른 그가 5년 임기를 마친 86년 정년이 아직 멀었음에도 대법관에 재임명되지 못한 이유가 전두환 정권에 밉보였기 때문이란 건 오늘날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대법원을 떠난 이회창은 민주화 염원이 무르익던 87년 3월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갖는데 그 주제가 바로 사법적극주의다. 이로부터 꼭 22년 뒤인 2009년 5월12일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이회창이 행한 연설을 통해 그가 그토록 강조한 사법적극주의가 도대체 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법의 해석 적용에 있어 법률 규정대로 충실하게 해석·적용하려는 소극적 자세가 있고, 단순한 자구 해석을 넘어 법의 이념인 정의 실현을 위해 창조적인 해석·적용을 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세가 있다. 후자가 이른바 사법적극주의다. 나는 법관으로 있을때 사법적극주의자였다. 사법소극주의자들은 ‘사법적극주의는 사법이 그 한계를 넘어 입법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법관은 자신의 일이 법률 규정의 문언 그대로 충실히 해석·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정의 관념에 맞게 법문을 확대 또는 축소 해석해 정의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법관으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87년 이회창의 사법적극주의 주장은 젊은 법학도들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회창이 사법적극주의를 거론했다.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미디어법을 놓고 헌법재판소가 “법률 개정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개정된 법률 자체의 효력은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다. 그는 10월30일 기자회견에서 “헌재가 절차의 위법성을 확정하고서도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뺌한다면 헌재는 왜 애써 위법 판단을 했고, 또 헌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고 일갈했다. “헌재가 이렇게 도망가선 안 된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촉구에서 ‘사법적극주의자 이회창’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는 “일단 헌재 결정이 선고된 이상 이를 존중해야 한다. 헌재 결정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해서 거부하는 건 공당(公黨)의 자세가 아니다”는 말로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지만….


    참고로 요즘 판사들 사이엔 이회창의 바람과 달리 ‘사법소극주의’가 대세라고 한다. 한 중견 법관은 “판사들 대부분 법을 ‘창조’하기보다는 있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는 게 도리에 맞다고 여긴다. 사법적극주의를 지지하는 법관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서도 판사들은 별 이의가 없다”고 전했다. 사실 법관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사법적극주의자를 자처해도 어차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사건이 접수돼야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사건을 제기하는 건 검사나 변호사 몫이지 법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정치,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판사 대신 시민운동가를 택하라”던 어느 전직 대법관의 조언이 떠오른다. 법률가들에게 사법적극주의가 옳으냐, 아니면 사법소극주의가 옳으냐는 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難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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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에서 진보·보수의 양쪽 끝에 각각 서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박시환(왼쪽)·신영철(오른쪽) 대법관이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의원의 의원직 박탈 여부를 놓고 한바탕 격돌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끕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문 전 의원 상고심 사건은 당초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에 배당됐습니다. 대법원 3부에는 신 대법관 말고도 박시환, 안대희, 차한성 3인의 대법관이 더 있죠.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은 통상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심리해 판결하는 게 보통입니다. 다만 이는 대법관 4명이 합의 끝에 만장일치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죠. 합의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려 도저히 결론 도출이 불가능할 것 같으면 사건은 부를 떠나 전원합의체로 넘겨집니다.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13인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는 다수결로 판결을 확정하죠.


    문 전 의원 사건의 경우 검찰이 공소장에 범죄사실 말고 판사한테 유죄의 심증을 줄 수 있는 사항을 기재한 게 법률에 어긋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형사소송법과 그 시행규칙에 따르면 공소장에는 사건에 관해 법원이 예단을 갖게 할 수 있는 서류 등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런 내용을 인용할 수 없게 돼있죠. 이를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어겼다”는 문 전 의원 측 주장에 주심인 신 대법관은 “재판이 진행되고 난 다음 법관의 심증 형성이 이뤄진 단계에서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주장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반면 같은 부의 박 대법관은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 경우 시기에 상관 없이 공소를 기각해야 하므로 원심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맞섰죠.


    둘의 견해차가 너무 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사건은 대법원 3부를 떠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0월22일 문 전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문 전 의원의 ‘금배지’를 박탈했습니다. 신 대법관 등 9명은 원심 확정에, 박 대법관 등 4명은 파기환송에 각각 표를 던졌습니다. 김영란, 김지형, 전수안 3인의 대법관이 박 대법관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소수의견에 그쳤죠.


    다수의견을 주도한 신 대법관은 올해 5월 박 대법관 때문에 겪은 ‘수모’를 톡톡히 갚아준 셈이 됐습니다.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시위 관련자 재판을 맡은 단독판사들에게 “재판을 빨리 하라”는 압력성 이메일을 보낸 것 때문에 대법원장 경고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던 시절 박 대법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신 대법관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죠.


    1953년생 동갑에 서울대 법대 72학번 동기이기도 박·신 두 대법관은 각각 ‘재야’와 ‘정통법관’의 시각을 대변해 대법원 내 대표적 ‘라이벌’로 불립니다. 박 대법관이 한마디로 ‘운동권’의 길을 걸어왔다면, 신영철 대법관은 늘 법원 내 주류 세력에 속했던 ‘엘리트’죠. 사법시험은 신 대법관이 3년 먼저 붙었지만, 대법원 입성은 박 대법관이 3년 가량 더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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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법원마다 다른 판결로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한 세계일보 2009년 10월29일자 9면.

    “해당 법률 조항이 위헌이란 사실이 확인된 만큼 유죄라고 판단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이제식 판사가 10월28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이유입니다. 야간 옥외집회를 사실상 금지한 집시법 10조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반되지만, 2010년 6월까지는 효력을 인정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놓은 뒤 하급심 법원에서 처음 나온 무죄 판결이죠.


    헌재 결정이 내려진 뒤 그동안 대구지법, 울산지법, 서울북부지법 등은 관련 사건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단보다 “2010년 6월까지 효력을 인정한다”는 결정에 더 무게를 둔 것이죠. 하지만 이 판사는 후자보자 전자를 중시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직결된 형사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젊은 법관의 고뇌가 엿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사는 “2010년 6월까지 효력을 인정한다”는 헌재 결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셈이 됐지만 이게 이 판사 또는 법원의 문제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헌재가 집시법 10조에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을 1년 동안 계속 적용하라고 하는 건 헌정국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어정쩡한 결론을 낼 바에야 차라리 선고를 1년 뒤로 미루는 게 나았습니다.


    헌재는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근거로 새 법률이 만들어질 때까지 벌어질 혼란을 들었으나,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한 판사는 “위헌 결정이 나면 법원은 해당 법률 조항이 없어진 점을 근거로 관련 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내리면 되고, 검찰은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서 전부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데 무슨 혼란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더니 헌재 혼자 이것저것 고민하느라고 끙끙 앓다가 수준 이하의 결과를 내놓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선고 전에 헌재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조대현 재판관은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등 실무에서 겪을 어려움을 예견하고 “당장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동료 재판관들에 의해 무시당했죠. 제도가 그렇게 돼있어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2명이 헌법불합치를 주장한 사안에서 헌법불합치가 최종 결론으로 채택된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위헌이면 위헌이고 합헌이면 합헌이지 왜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같은 변형결정을 자꾸 해 논란을 일으키나. 20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듣질 않아.” 1988∼94년 초대 헌재 재판관을 지낸 변정수 변호사의 탄식입니다. 헌재는 변형결정 효력 인정을 놓고 대법원과 다툴 게 아니라 지금 심리하는 사건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는 일에 더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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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주요 방송사의 메인 드라마가 일제히 검사를 ‘비열한 배신자’, ‘출세 지상주의자’로 묘사하고 나서 눈길을 끕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KBS, 2007년), ‘아현동마님’(MBC, 2007∼2008년), ‘신의 저울’(SBS, 2008년) 등 검사를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뒤라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일고 있죠.

    MBC가 ‘밥줘’ 후속으로 내보내는 일일드라마 ‘살맛납니다’는 검사 임용을 앞둔 기욱(이민우)이 7년간 사귄 여자친구 민수(김유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욱은 “너는 여자도 아니다. 먼저 가슴 확대수술부터 받아라”고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연애 위자료’라며 500만원을 건네는 등 패륜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여성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죠.


    10월27일 방영분에서 “곧 검사 사위를 본다”며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던 민수 어머니 풍자(고두심)는 딸이 “이제 나 필요없대. 자기한테 날개를 달아줄 여자가 필요하대”라고 말하자 격분합니다. 28일엔 기욱을 찾아간 풍자가 “어떻게 내 딸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기욱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영됐죠.


    KBS가 ‘솔약국집 아들들’ 후속으로 내보내는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도 첫회에 초임검사 왕재수(고세원)가 5년간 사귄 여자친구 주어영(오지은)과 헤어지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왕재수는 “너무 남자에게 집착하는 것도 병이다. 정신병원에나 가봐라”고 비아냥거리다가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경찰서 강력팀장 김이상(이준혁)에게 붙잡혀 얼굴을 얻어맞았죠.


    두 드라마가 다 초입 단계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연애, 이별 같은 검사의 ‘사생활’만 다루는 것에 그치진 않을 전망입니다. ‘수상한 삼형제’의 경우 왕재수가 복수를 위해 김이상의 신원조사를 지시하는가 하면 일부러 김이상이 속한 경찰서를 지휘하는 부서로 발령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내보냈습니다. 은근슬쩍 검사의 ‘직무’까지 건드리고 있는 셈이죠.


    일각에선 검찰의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수사와 기소에서 비롯된 방송작가들의 반감이 은연중에 작품에 녹아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드라마 작가들도 ‘PD수첩’ 같은 교양 프로그램 작가들과 함께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죠. ‘조두순 사건’의 법률 적용 오류와 항소 포기, 효성비자금 부실수사 논란 등으로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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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가 경찰관에게 얻어맞았다. 주말 오후 전파를 타는 KBS 2TV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다. 10월17일 방영된 첫회에서 주인공인 경찰서 강력팀장 김이상(이준혁)은 갓 임용된 초임검사 왕재수(고세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때렸다. 서로 신분을 아는 상황에서 왕재수가 “경찰이 감히 검사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김이상은 소속 경찰서와 보직이 적힌 명함까지 건네며 “억울하면 진단서를 끊어 찾아오라”고 비웃었다.   


    작가가 붙인 등장인물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경찰대학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강력팀을 이끄는 이상적인 주인공의 이름은 김이상이다. 반면 사시 공부할 때와 사법연수원 시절을 포함해 5년간 자신을 뒷바라지한 여자친구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검사 이름은 왕재수다. 극중 왕재수는 “헤어질 수 없다”는 여자친구에게 “남자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도 정신병이다. 정신병원에나 가보라”는 악담을 퍼붓고 줄행랑을 치다가 그만 김이상에게 붙잡힌다. 김이상은 “이건 저 여자 대신”이라며 왕재수에게 주먹을 날린다.


    경험이 부족한 초임검사가 베테랑 경찰관에게 얻어맞는 드라마 속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력범죄 특별수사본부를 무대로 한 MBC의 2007년 드라마 ‘히트’에서도 그랬다. 김재윤(하정우)은 검사 임용을 하루 앞두고 불법 카지노에 놀러갔다가 조직폭력배 뒤를 쫓는 강력반 경위 차수경(고현정)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이후 연쇄살인범 검거를 위한 특별수사본부에 파견된 김재윤은 차수경에게 또 뺨을 얻어맞는 신세가 된다.



    ‘히트’가 방영될 당시 검찰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대검찰청 부대변인이던 김진숙 검사(현 사법연수원 교수)는 검찰 내부소식지 ‘뉴스프로스’에 기고한 글에서 “검사가 경찰에게 얻어맞거나 업무 면에서 경찰 지시를 받는 장면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며 “아마도 현실을 뒤바꾸어 극적 카타르시스를 얻어 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고 비판했다. 최근 ‘수상한 삼형제’에서 경찰이 멋있게, 검사가 못나게 나오자 벌써 시청자 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멋진 경찰관이 주인공이어서 좋다”는 반응부터 “검사와 경찰의 관계가 실제와 너무 다르다”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조만간 ‘히트’ 때처럼 검찰이 정색을 하고 대응에 나설 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보면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검사는 ‘정의의 화신’으로 그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검사와 여선생’과 ‘공공의 적 2’, SBS 드라마 ‘모래시계’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들 작품을 보며 “커서 검사가 돼 우리 사회에 정의를 구현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영화·드라마 속 검사의 캐릭터가 한심하고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아예 대놓고 등장인물 이름을 ‘왕재수’라고 붙일 지경에 이르렀다. 대검찰청이 아무리 방송작가들을 초청해 홍보해도 별 효과가 없는 듯 하다.


    드라마 속 검사가 푸대접을 받는 모습은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에서 검찰은 법률 적용을 잘못하고 항소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봐주기’, ‘부실수사’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몇몇 의원은 “경찰보다 못한 검찰”이라고 이귀남 장관을 질책했다. 검찰의 심기일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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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여러분, 이제 판결문도 ‘에지있게’ 씁시다!”


    얼마 전 끝난 SBS 드라마 ‘스타일’을 계기로 유행어가 된 ‘엣지’가 법원에서도 화제입니다. 읽기 쉽고 간결한 판결문을 ‘엣지있다’고 칭찬하며 따라 배우려는 움직임이 그것이죠. ‘모서리’, ‘끝’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엣지(edge)’는 요즘네티즌 사이에 ‘개성있다’, ‘예리하다’, ‘깔끔하다’는 등으로 뜻이 확장돼 쓰이고 있습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홍진호(38) 판사가 법원 내부소식지 ‘법원 사람들’ 10월호를 통해 ‘엣지있는’ 판결문의 네 가지 조건을 소개했습니다. 먼저 짧은 문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엔 분량이 수십쪽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 문장으로 된 판결문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여러 문장으로 나눠 쓸 때 간결하고 이해하기 편하겠죠.



    둘째, 판결문 중간에 쟁점별로 번호와 소제목을 넣으면 이해가 쉽습니다.



    셋째, 결론을 가장 앞에 내세우는 ‘두괄식’ 문장을 써야 합니다. 홍 판사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근거를 길게 늘어놓은 다음 결론을 제시하면 읽을 때 답답하고 번거롭다”며 “결론부터 앞세우는 게 명쾌하고 자신있어 보인다”고 설명하죠.



    마지막으로 사건 내용에 따라 도표, 수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각종 비용 청구소송에 꼭 들어가는 복잡한 원금 및 지연손해금 계산과정, 공사대금 청구사건에서 등장하는 공사비 정산내역 같은 건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하면 읽기 편하죠.



    홍 판사에 따르면 요즘 공판중심주의 강조로 법정 심리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 판결문을 빨리 작성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간결·명료하고 읽기 편한 ‘엣지있는’ 판결문이 강조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법원 판결문이 국어 교과서처럼 쉽게 읽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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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인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왼쪽)과 민일영 대법관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편이 대법관에 임명된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습니다. 자신이 대표가 돼 발의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남편의 ‘직장’인 대법원이 발끈하고 나선 탓이죠. 박 의원의 남편은 9월17일 취임한 민일영 대법관입니다.


    박 의원이 동료 의원 13명을 대표해 제출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헌재의 결정 형식으로 ‘위헌’과 ‘합헌’만 규정한 현행 법률을 고쳐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 등 이른바 변형결정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헌재는 1988년 창설 이후 20년 넘게 변형결정을 내려왔으나 이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법조계·법학계에서 논란이 됐죠.


    특히 대법원은 96년 이래 헌재 변형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실지거래가격 양도소득세’ 사건에서 헌재가 소득세법 23조 2항 등에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자, 대법원은 “단순 위헌과 달리 한정위헌 결정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헌재 결정과 반대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죠. 두 기관의 법리 논쟁은 감정싸움으로 비화돼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박 의원 개정안 내용대로 헌법재판소법에 변형결정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대법원은 더 이상 변형결정의 효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법률에 대한 최종 해석권이 대법원에서 헌재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게 판사들 주장입니다. 헌재가 특정 법률 조항을 놓고 “∼라고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는 순간 법원의 법률 해석이 그에 종속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개정안에 결사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온몸을 던져서라도 개정을 막겠다”며 항전 의지를 불사르는 중입니다.


    공교롭게도 박 의원의 남편은 오랜 판사 생활을 거쳐 지난달 대법원에 입성한 민 대법관입니다. 판사 전체가 똘똘 뭉쳐 반대하는 법률안 개정을 주도하는 이가 하필 현직 대법관의 아내라니, 참으로 기묘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헌재와 대법원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 박 의원 측은 놀란 기색이 역력합니다. 박 의원의 한 측근은 “헌법재판소법이 개정되더라도 법률을 최종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하는 주체는 일반 법원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권한과 기능에는 변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죠. 헌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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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구내에 ‘검찰체험관’이란 게 있습니다. 2008년 10월 완공된 디지털포렌식센터(DFC) 건물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 체험관은 넓이 294㎡의 공간에 검찰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갖추고 방문자를 맞이합니다. 검찰청사에 견학을 온 초·중·고교생이 주된 손님인데, 검찰의 과학수사 기법을 소개받고 첨단 장비를 둘러본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간다고 합니다. 대검찰청은 2009년 5월4일 열린 검찰체험관 개관식에 ‘명예검사’인 탤런트 이서진·이보영씨를 부르는 등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고 노력 중이죠.


    검찰체험관은 ‘프로스피아’(PROSPIA)라는 서양식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프로스피아는 ‘프로시큐터즈 오피스 유토피아’(Prosecutors’ office Utopia)에서 검찰을 뜻하는 앞의 ‘프로스’와 유토피아(이상향)의 끝 ‘피아’를 따 붙여 만든 신조어죠. 영어 단어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검찰의 이상향’ 또는 ‘이상적 검찰청’ 정도 뜻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검찰체험관이 왜 하필 이상적 검찰청인지 좀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프로스피아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스피아는 잘못된 어법이라고 지적하는 검사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서울고검 송무부 김규헌 검사가 주인공입니다. 재즈 가창와 악기 연주, 영화평론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어 ‘아트 검사’란 별명을 가진 법조인이죠. 김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프로스피아 유감’이란 글은 요즘 아무데나 ‘∼피아’란 용어를 갖다붙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언어 현상을 꼬집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곳곳에는 ‘∼피아’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워터피아, 스파피아, 스포피아, 댄스피아, 메디피아 등등에서 ‘피아’(pia)라는 뒤의 음절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토피아’를 연상케 해 수영(워터피아), 온천욕(스파피아), 운동(스포피아), 춤(댄스피아), 의료(메디피아) 등을 즐기는 이상적 장소로 받아들이게끔 하기에 그토록 애용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김 검사에 따르면 영어의 ‘유토피아’(Utopia)는 라틴어로 부정의 뜻을 가진 ‘유’(ou)와 위치 또는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 그리고 합성명사를 만들어주는 어미 ‘이아’(-ia)가 붙어 생긴 말입니다. 따라서 유토피아를 둘로 나누면 ‘유 + 토피아’가 돼야지 ‘유토 + 피아’는 아니라는 겁니다. 즉, 어떤 곳이 아주 이상적인 장소임을 강조하고 싶으면 끝에 ‘피아’를 붙여선 곤란하고 ‘토피아’를 붙여야 그나마 뜻이 통한다는 게 김 검사 주장의 요지입니다.


    그럼 검찰을 지칭하는 ‘프로스’라는 용어는 괜찮을까요. 유감스럽지만 이 또한 잘못이라는 게 김 검사의 지적입니다. 프로스는 검사를 뜻하는 ‘프로시큐터’(prosecutor)에서 온 말입니다. 김 검사가 글을 올린 검찰 내부통신망이 ‘이프로스’(e-Pros)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게 이 때문입니다. 검사들끼리 서로 부를 때 “김 프로, 이 프로” 하듯이 프로는 종종 검사와 동의어로 쓰입니다. 그런데 프로시큐터를 줄여 부를 때 ‘프로’라고 하면 몰라도 ‘프로스’는 절대 안 된다고 김 검사는 말합니다.


    “프로시큐터의 동사인 프로시큐트(prosecute, 공소를 제기하다)의 라틴어 어원을 따져보면 ‘∼을 대신해’라는 뜻의 프로(pro)와 ‘추적하다’는 뜻의 시퀴(sequi)가 결합된 단어이므로 당연히 ‘프로 + 시큐트’로 나눠집니다. ‘프로’라면 몰라도 ‘프로스’라는 말 자체는 독자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겁니다. 잘못된 점조차 모른 채 거의 무의식적으로 쓰여 온 것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검사 말대로라면 검찰체험관의 서양식 표기인 프로스피아는 어떻게 바꿔야 좋을까요. 일단 끝의 ‘피아’는 ‘토피아’라고 해야 맞고, 앞의 ‘프로스’는 ‘프로’라고 해야 옳다는 것이니까 ‘프로스피아’(PROSPIA) 대신 ‘프로토피아’(PROTOPIA)로 적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프로토피아도 흔히 ‘콩글리쉬’라는 비아냥을 듣는 어설픈 한국식 조어(造語)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검사는 “프로스피아 대신 프로토피아라고 다시 명명할 경우 적어도 ‘격이 무너진 엉터리 언어 사용’이라는 시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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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처음 공개 세미나를 엽니다. 그간 회원 명단이나 활동 내용 등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 “법원 내 사조직”이란 비판을 받아온 단체의 ‘커밍아웃’이란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우리법연구회는 10월10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고법(사진) 4층 중회의실에서 ‘노동사건 심리의 몇 가지 문제점’을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연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가 주제발표를 하고 서울중앙지법 김성수 판사, 수원지법 이병희 판사가 토론자로 나서죠. 이들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회원입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자체 세미나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한 건 법원 안팎에서 제기된 ‘폐쇄성’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일부 보수단체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사건을 맡으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겠다”며 연구회를 공격했죠. 회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때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이라며 판사 129명의 이름, 사법시험 기수 등이 적힌 괴문서가 떠돌았죠.


    우리법연구회 관계자는 “자꾸 명단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이제껏 펴낸 논문집에 나온 저자 이름만 봐도 누가 회원인지 다 알 수 있다”며 “계속 문제를 삼으며 정치집단처럼 몰아붙이니 아예 우리 세미나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법연구회는 자체 세미나 일정 등을 법원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얼마 전 법원 내부전산망 ‘코트넷’에 정식 학회로 등록하는 절차도 마친 상태죠.


    지난달 임기만료로 퇴임한 김용담 전 대법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법연구회가) 학술모임답게 회원 명단과 연구회 사이트를 공개하는 등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오해가 불식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 공개 세미나를 통해 우리법연구회가 폐쇄적 운영에서 벗어나 외부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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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5일 오후 5시50분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속한 어느 의원 측에서 이메일로 보낸 보도자료를 읽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이날 법사위는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국정감사를 벌이고 있었죠. 보도자료엔 헌재 사무처장 이름이 ‘김용담’으로 잘못 적혀 있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랬으니 참 민망한 노릇이죠.


    김용담이 누구인가요. 지난달 6년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을 떠난 전직 대법관입니다. 퇴임 몇 달 전까지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했습니다. 아마 이 의원실 관계자는 헌재 사무처장과 법원행정처장을 혼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법사위 소관으로 구조나 기능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는 하나 이건 좀 심합니다. 10월20일로 예정된 대법원 국정감사는 아직 한참 남아 있지 않은가요.


    해당 의원실에선 하루가 지난 6일 오전 8시20분쯤에야 부랴부랴 수정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하철용 헌재 사무처장 이름이 잘못 기재되는 등 수정돼야 할 부분이 있다”는 짤막한 설명만 곁들였습니다. 원래 별 내용이 없는 자료였던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이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역시나 한 건도 없습니다. 하긴, 보도자료를 받아든 기자 대부분이 “피감기관 수장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무성의한 의원실”이라고 비웃으며 자료를 내던졌을 게 뻔합니다.


    법사위 의원들은 5일 이강국 헌재소장이 취임 인사차 헌재에 온 정운찬 국무총리와 만난 것을 트집잡았습니다. “국정감사 도중 외부인을 접견한 건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며 공격에 열을 올렸고, 이 소장도 사과했습니다.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나 정 총리가 이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도 인사를 간 점을 감안하면 헌재·대법원을 동등하게 예우하기 위한 불가피한 택일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해마다 국정감사철만 되면 호통을 치며 핏대를 높이는 의원들과 쩔쩔매는 피감기관장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룹니다. 의원들은 걸핏하면 “국회를 무시하는 것이냐”며 피감기관 관계자들을 압박하죠.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아야 할 피감기관 수장 이름도 모르면서 무슨 감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의원들의 성의있는 준비와 예의바른 자세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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