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제국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법원마다 다른 판결로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한 세계일보 2009년 10월29일자 9면.

    “해당 법률 조항이 위헌이란 사실이 확인된 만큼 유죄라고 판단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이제식 판사가 10월28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이유입니다. 야간 옥외집회를 사실상 금지한 집시법 10조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반되지만, 2010년 6월까지는 효력을 인정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놓은 뒤 하급심 법원에서 처음 나온 무죄 판결이죠.


    헌재 결정이 내려진 뒤 그동안 대구지법, 울산지법, 서울북부지법 등은 관련 사건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단보다 “2010년 6월까지 효력을 인정한다”는 결정에 더 무게를 둔 것이죠. 하지만 이 판사는 후자보자 전자를 중시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직결된 형사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젊은 법관의 고뇌가 엿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사는 “2010년 6월까지 효력을 인정한다”는 헌재 결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셈이 됐지만 이게 이 판사 또는 법원의 문제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헌재가 집시법 10조에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을 1년 동안 계속 적용하라고 하는 건 헌정국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어정쩡한 결론을 낼 바에야 차라리 선고를 1년 뒤로 미루는 게 나았습니다.


    헌재는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근거로 새 법률이 만들어질 때까지 벌어질 혼란을 들었으나,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한 판사는 “위헌 결정이 나면 법원은 해당 법률 조항이 없어진 점을 근거로 관련 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내리면 되고, 검찰은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서 전부 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데 무슨 혼란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더니 헌재 혼자 이것저것 고민하느라고 끙끙 앓다가 수준 이하의 결과를 내놓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선고 전에 헌재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조대현 재판관은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등 실무에서 겪을 어려움을 예견하고 “당장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동료 재판관들에 의해 무시당했죠. 제도가 그렇게 돼있어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2명이 헌법불합치를 주장한 사안에서 헌법불합치가 최종 결론으로 채택된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위헌이면 위헌이고 합헌이면 합헌이지 왜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같은 변형결정을 자꾸 해 논란을 일으키나. 20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듣질 않아.” 1988∼94년 초대 헌재 재판관을 지낸 변정수 변호사의 탄식입니다. 헌재는 변형결정 효력 인정을 놓고 대법원과 다툴 게 아니라 지금 심리하는 사건에서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는 일에 더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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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여러분, 이제 판결문도 ‘에지있게’ 씁시다!”


    얼마 전 끝난 SBS 드라마 ‘스타일’을 계기로 유행어가 된 ‘엣지’가 법원에서도 화제입니다. 읽기 쉽고 간결한 판결문을 ‘엣지있다’고 칭찬하며 따라 배우려는 움직임이 그것이죠. ‘모서리’, ‘끝’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엣지(edge)’는 요즘네티즌 사이에 ‘개성있다’, ‘예리하다’, ‘깔끔하다’는 등으로 뜻이 확장돼 쓰이고 있습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홍진호(38) 판사가 법원 내부소식지 ‘법원 사람들’ 10월호를 통해 ‘엣지있는’ 판결문의 네 가지 조건을 소개했습니다. 먼저 짧은 문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엔 분량이 수십쪽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 문장으로 된 판결문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여러 문장으로 나눠 쓸 때 간결하고 이해하기 편하겠죠.



    둘째, 판결문 중간에 쟁점별로 번호와 소제목을 넣으면 이해가 쉽습니다.



    셋째, 결론을 가장 앞에 내세우는 ‘두괄식’ 문장을 써야 합니다. 홍 판사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근거를 길게 늘어놓은 다음 결론을 제시하면 읽을 때 답답하고 번거롭다”며 “결론부터 앞세우는 게 명쾌하고 자신있어 보인다”고 설명하죠.



    마지막으로 사건 내용에 따라 도표, 수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각종 비용 청구소송에 꼭 들어가는 복잡한 원금 및 지연손해금 계산과정, 공사대금 청구사건에서 등장하는 공사비 정산내역 같은 건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하면 읽기 편하죠.



    홍 판사에 따르면 요즘 공판중심주의 강조로 법정 심리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만큼 판결문을 빨리 작성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간결·명료하고 읽기 편한 ‘엣지있는’ 판결문이 강조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법원 판결문이 국어 교과서처럼 쉽게 읽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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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처음 공개 세미나를 엽니다. 그간 회원 명단이나 활동 내용 등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 “법원 내 사조직”이란 비판을 받아온 단체의 ‘커밍아웃’이란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우리법연구회는 10월10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고법(사진) 4층 중회의실에서 ‘노동사건 심리의 몇 가지 문제점’을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연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가 주제발표를 하고 서울중앙지법 김성수 판사, 수원지법 이병희 판사가 토론자로 나서죠. 이들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회원입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자체 세미나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한 건 법원 안팎에서 제기된 ‘폐쇄성’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일부 보수단체는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사건을 맡으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겠다”며 연구회를 공격했죠. 회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때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이라며 판사 129명의 이름, 사법시험 기수 등이 적힌 괴문서가 떠돌았죠.


    우리법연구회 관계자는 “자꾸 명단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이제껏 펴낸 논문집에 나온 저자 이름만 봐도 누가 회원인지 다 알 수 있다”며 “계속 문제를 삼으며 정치집단처럼 몰아붙이니 아예 우리 세미나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법연구회는 자체 세미나 일정 등을 법원 구성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얼마 전 법원 내부전산망 ‘코트넷’에 정식 학회로 등록하는 절차도 마친 상태죠.


    지난달 임기만료로 퇴임한 김용담 전 대법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법연구회가) 학술모임답게 회원 명단과 연구회 사이트를 공개하는 등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오해가 불식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 공개 세미나를 통해 우리법연구회가 폐쇄적 운영에서 벗어나 외부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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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구분짓던 철조망이 철거돼 대법원·대검을 서로 이어주는 통로가 활짝 열렸다. 사진은 대검 구내에서 대법원 구내를 바라본 모습.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과 대검찰청 사이에 설치됐던 철조망이 ‘친환경 울타리’로 대체됩니다. 대법원·대검이 나란히 서초동으로 이전한 지 10여년만의 일입니다.


    두 기관 사이에 철조망을 설치해 경계 담장으로 활용해온 곳은 대법원입니다. 1995년 서울 서소문 부근에 있던 대검이 먼저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뒤 대법원도 서소문 청사를 떠나 대검 바로 앞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죠. 나중에 들어선 대법원이 대검과 경계 담장으로 삼기 위해 철조망을 만들었다는 게 당시 사정을 아는 이들의 설명입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영역을 나누는 기능과 별개로 이 철조망은 흉한 겉모습 때문에 오래 전부터 ‘철거론’에 시달렸습니다. 일각에선 철조망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의 양대 축인 법원과 검찰의 ‘단절’을 상징한다며 두 조직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죠. 실제로 정상명 검찰총장 시절인 2006년 초 대검이 철조망 철거를 놓고 대법원과 논의했으나 보안상 이유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 대법원·대검찰청을 ‘분단’시켜온 철조망을 철거하기 위한 공사가 9월26일 시작됐다. 사진은 대검 구내에서 철조망 제거 작업 중인 공사 차량의 모습.

    철조망 탓에 대검에서 대법원, 또는 대법원에서 대검으로 이동하려면 많이 돌아서 가야 합니다. 철조망 중간 지점에 쪽문이 하나 있긴 하지만 주말엔 닫혀 있고 평일에도 오후 7시 이후론 폐쇄되는 등 이용에 많은 제약이 따른 게 사실입니다. 한동안 대검은 쪽문 옆에 공익근무요원을 배치해 두 기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점검하기도 했죠.


    이번에 대법원이 철조망을 없애는 결정을 내리는 데엔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총장은 취임 직후 이용훈 대법원장, 박일환 법원행정처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대검의 경계 담장 노릇을 하는 철조망을 거론하며 “없애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는 후문이죠. 대법원 관계자도 “철조망을 없애자는 아이디어는 검찰이 먼저 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보안상 이유 때문에 대검과의 경계 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대법원 입장입니다. 철조망 대신 친환경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대법원은 “검찰은 경계 담장 자체가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법원은 어디까지나 보기 흉한 철조망을 친환경 울타리로 대체하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앞으로 들어설 친환경 울타리가 얼마나 환경미화에 도움이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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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박사 공판도 있어서….” (이남석 검사)

    “그것 아직도 안 끝났나요?” (이규진 부장판사)

    12월29일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비리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정화삼씨 형제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505호 법정에서 난데없이 폭소가 터졌습니다. 심리를 맡은 이 법원 형사합의22부 이규진 부장판사의 물음에 방청객들이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한 탓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앞으로 정씨 형제 사건 재판이 열리는 날짜를 가급적 월요일로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금요일엔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 공판이 잡혀있는 등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재판 일정이 꽉 차 월요일밖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죠.


    그런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대표해 공판에 나선 이남석 검사는 매주 월요일마다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는 이 사건 외에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1심 공판에도 관여하고 있는데, 황 박사 재판이 마침 월요일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가급적 월요일에 공판을 열자”는 재판부 제안에 난처해진 이 검사는 “황 박사 공판도 월요일이어서 곤란할 수 있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장판사가 “그 사건 재판이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되물었고 이게 방청석의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결국 법원 측이 “(공판 일정이) 겹치지 않게 잘 조정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논란은 마무리됐습니다.



    이제껏 진행된 황 박사 재판 과정을 돌아보면 이 부장판사가 깜짝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는 2006년 5월 검찰에 의해 기소된 지 벌써 2년6개월 넘게 1심 재판을 받고 있죠.


    법원에 따르면 이 사건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 벌써 30차례 이상 공판이 열려 무려 100명 이상의 증인이 채택됐지만 증인신문 진행도는 7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법원 안팎에선 “나머지 증인들에 대한 신문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내년 중반쯤 선고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죠. 새해에는 정말 황 박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론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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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왼쪽)과 대검찰청. 법원의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와 검찰의 검사장은 행정부의 차관에 해당하는 고위간부다. 현재 고등부장의 졍원은 133명이고 검사장은 45명이다.


      “‘45 대 133’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검찰이 차관급 고위간부 숫자에서 법원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며 투덜대고 있습니다. 똑같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법률 전문가’인데 검사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판사보다 승진 기회의 폭이 훨씬 좁다는 것이죠.


      행정부의 차관과 같은 예우를 받아 ‘검찰의 별’로 불리는 검사장의 숫자는 45명입니다. 여기엔 법무부 차관, 법무연수원장, 법무부 실·국장과 대검찰청 부장, 고등·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이 총망라돼있죠. 반면 역시 차관급에 해당돼 ‘법원의 꽃’으로 통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는 현재 전국 법원에 122명이 있습니다. 고등·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실장 등도 고등부장으로 분류되죠. 그나마 현 인원이 120여명일 뿐 실제 정원은 133명이란 게 대법원의 설명입니다. 결국 고등부장이 검사장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셈이죠.


      원래 전체 판사 대 검사의 비율이 3 대 1 정도라면 고위간부 숫자도 그렇게 정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판·검사 정원은 각각 2074명, 1587명이더군요. 비율로 따지면 4 대 3 가량 되죠. 대법원과 법무부는 최근 개정된 판·검사정원법에 따라 올해부터 5년간 판·검사 수를 각각 470명, 220명씩 늘릴 예정입니다. 이 계획이 순조롭게 실행된다면 오는 2010년 판·검사 숫자는 각각 2544명, 1807명에 이를 전망이죠. 그런데 이 경우에도 비율로 치면 기존의 4 대 3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에서 사시 23회 검사 36명 중 7명만이 가까스로 검사장을 달았습니다. 검찰에서 24회가 검사장이 되려면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웃 법원에선 검찰보다 한 기수 아래인 24회에서도 판사 8명이 고등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결국 검찰보다 법원이 더 승진이 빠른 셈이니 검사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죠. 검사장 자리의 숫자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한 검사는 “차관급 공직자의 숫자에 있어서 법원이 검찰보다 2배도 넘게 많은 것은 문제”라며 “이 때문에 검찰과 법원 간에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검찰 내부의 내부 반발이 심각하다”고 전합니다.


      현재 법무부는 서울중앙지검 1·2·3차장을 각각 검사장급 보직으로 격상시켜 검사장 정원을 지금보다 3명 많은 48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대검이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한 박한철 대구고검 차장의 대구 부임을 잠정 보류하고 당분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직무대리를 맡도록 한 것은 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나 기획예산처 같은 관련 부처들이 “가뜩이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마당에 차관급 자리를 또 만드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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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왼쪽)과 이정석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원래 이 판사 혼자 하던 법원의 공보 업무를 변 부장판사의 지휘 아래 둘이 함께 하게 됐다.


    “공보관 이름으로 드리는 메일은 이번 12번째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만 접어야 할 듯합니다.”

    최근 각 언론사 법조팀 기자들에겐 이런 구절이 담긴 이메일이 한통씩 배달됐습니다. 이정석(41·사시32회) 대법원 공보관(판사)이 쓴 편지입니다. 이 공보관은 지난해 취임 이후 매월 한차례 출입기자들에게 ‘대법원 공보관이 드리는 ○월의 편지’란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라면 모를까, 이메일 하나 만들어 쫙 뿌리는 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달마다 시의적절한 주제 하나를 선정해 죽 풀어나간 그의 편지는 참신한 소재와 유려한 문체로 글 쓰는 게 업(業)인 기자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공보관의 편지가 12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정석 판사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옮기고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인 변현철(46·사시27회) 부장판사가 새 공보관에 임명된 탓이죠. 물론 이 판사의 보직이 바뀌는 게 그가 공보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변 부장이 정식 공보관 직무를 수행하고, 이 판사는 옆에서 변 부장을 돕게 됐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즉, 전엔 판사 한명이 하던 공보 업무를 둘이 나눠 하게 된거죠. 이 판사 스스로도 편지에 “소속을 옮겨서도 신임 공보관님을 밀착 보좌하라는 명을 받았다”며 “기자들과의 소중한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 충실한 외곽지원 업무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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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전경.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열린 사법’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공보관을 사실상 2명으로 늘린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대법원이 이처럼 실질적 의미의 ‘부(副)공보관’ 직책을 신설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공보관 직위가 기존 고등법원 판사급에서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으로 한 단계 올라간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정석 판사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법원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대법원 공보관실의 격상 문제가 ‘열린 사법’ 구현을 위한 법원 공보 역량의 강화란 흐름 속에서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고참 판사인 공보관 밑에 부공보관을 둬 나름대로 역할분담을 꾀한 측면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앞으로 공보관은 각 언론사의 사회부장 등 데스크급을 주로 상대하고, 일선 취재기자에 대한 홍보는 부공보관이 맡아 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란 이용훈 대법원장의 복무방침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법원의 역할을 정확히 알리려면 언론을 통하는 수밖에 없고, 법원이 내놓는 모든 정책의 1차 고객은 결국 기자들임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죠. 이미 1년 남짓 공보 분야에서 일해 온 이정석 판사야 별로 두려울 게 없겠지만, 근엄한 재판장에서 ‘홍보맨’으로의 변신을 앞둔 변현철 부장의 기분은 어떨까요. 이 판사도 그 점이 걱정됐는지 이메일에 이렇게 썼더군요. “공보관 부임 이후 판사로서의 껍질을 깨야 하는 처음 2∼3개월은 어느 분이 오더라도 힘든 시기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변 부장님께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특별히 넉넉한 ‘허니문’ 기간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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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보다는 장맛비에 가까운 굵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쏟아지던 지난 5월6일 낮,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내려 대검찰청으로 향합니다. 토요일인데다 비까지 내려서인지 거리는 한산하기만 합니다. 우산을 펼쳐들고 길을 걷다보니 평소 밝은 흰색이던 대법원, 대검찰청 건물이 짙은 회색으로 보입니다. 건물 외벽에 붙은 대리석이 물에 축축하게 젖은 나머지 그런 색깔을 띠나봅니다. 한편으론 더 육중하고 장엄하게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층 어둡고 고독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기자실이 있는 대검찰청 별관 1층에 들어서니 화사한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주말이면 4층 홀에서 열리는 ‘검찰 가족’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입니다. 저들에게 검찰청은 어쩌다 한번쯤 찾는 ‘행사장’이지만 내겐 지난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온 ‘직장’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인사 발령으로 부서가 바뀌어 기자실 짐을 챙기러온 지금 입사 직후 법조팀에 배치돼 최근까지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남북정상회담 이면의 ‘뒷거래’를 파헤친 대북송금 특검, 고 정몽헌 회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현대비자금 사건, ‘언론사 법조팀 = 기피부서 0순위’임을 새삼 각인시켜준 불법 대선자금 사건, 60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던 대통령 탄핵, 의혹만 무성하고 실체는 없었던 러시아 유전사건과 행담도 사건, 검찰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로 기록될 ‘X-파일’ 사건과 줄기세포 조작사건, 재벌의 심장을 겨눈 현대차 비자금 사건……. 돌아보면 참 많은 사건들의 시작과 결말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서초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난 이들의 일터임이 분명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던데 아직도 그들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니 법원, 검찰청이 서당보다 훨씬 복잡한 기관이거나 아니면 제가 개보다 능력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겠죠. 짐을 챙기며 느낀 체념은 기자실을 나서 서초역으로 향할 때쯤 살짝 기대감으로 바뀝니다. 법원, 검찰청이 그저 똑똑한 이들끼리 모여 노는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일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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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의 꽃이라고 불리는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가장 비(非)전문가가 들어오더니, 얼마가 지나자 법원의 반발이 별것 아니라고 여겨졌는지 다른 한 사람의 비전문가가 추가되어졌다.”

    ‘6월항쟁’의 열기와 6·29선언의 감동이 채 식지 않은 1988년 1월의 어느 날 <법률신문>에 실린 양삼승(사진) 서울고법 판사(現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의 기고문입니다. ‘사법권은 계속 잠식당해야 할 것인가’란 자못 도발적인 제목을 단 이 글은 당시의 법원·검찰 관계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려 법조계에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죠. 양 판사의 지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왜 대법원에 검찰 출신이 2명이나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로 집약됩니다.


    양삼승 판사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1981년 전두환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5공화국 정권이 출범한 뒤 대법원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대 사건이 벌어졌죠. 당시 법무부 차관(고검장급)이던 정태균씨와 서울지검장(검사장급)이던 강우영씨가 각각 대법원판사(대법관의 옛 명칭)로 영입된 것입니다. 3공화국 이래 대법관들 가운데 1명을 검찰 출신 인사 중에서 뽑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긴 했으나 그 숫자는 어디까지나 1석이었죠. 그런데 5공 정권이 다짜고짜 이를 두 배로 늘렸으니 일선 법관들로선 당혹스러움과 함께 모욕감을 느낄 법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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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공화국 초기까지만 해도 검찰과 법원 간엔 빈번한 인사 교류가 있었다. 하지만 대법관 가운데 1명을 검찰의 검사장급 이상 간부 중에서 충원하는 관행이 정식으로 성립한 것은 1964년의 일이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철권통치에 단단히 주눅이 든 판사들은 이렇다할 반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대법관 중 2명을 검찰 출신으로 채우는 행태는 다음 인사 때에도 반복됐습니다. 정·강씨가 5년의 임기를 마친 1986년 이들의 후임으로 이명희 서울고검장과 이준승 광주고검장이 나란히 대법관에 지명된 것이죠. 이대로 가면 ‘대법관 2석 = 검찰 몫’이란 논리가 아예 ‘관습헌법’으로 굳어질 판이었습니다. 마침 이들의 임기 도중인 1988년 5공 헌법이 폐기되고 6공 헌법이 발효함에 따라 대법원 진용의 개편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양삼승 판사는 이런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과감히 검찰 출신 인사의 대법관 임명 관행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죠.


    물론 3공화국 초기까지만 해도 검찰과 법원 간엔 빈번한 인사 교류가 있었습니다. 광복 이전의 사법제도는 법원 산하에 ‘검사국’이 있어 검찰 업무를 맡는 구조였죠. 검찰·법원이 지금처럼 떨어지지 않고 ‘한 몸’이었던 탓에 판·검사도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법원과 검찰이 비로소 분리됐으나 판·검사는 한동안 그렇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어느 날 법관으로 변신하고, 판사가 법무부·검찰의 간부가 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시절이었죠.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일제시대에 판사로 출발했던 그는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을 지냈습니다. 그런 그가 1961년엔 대법관이 됐고 다시 법무부 장관(1963~66년 재임)을 거쳐 68년 대법원장에 임명, 78년까지 10년간 재직했습니다. 2대 검찰총장인 한격만 선생과 4대 검찰총장 김익진 선생 역시 대법관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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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강우영·김주한·지창권 전 대법관과 강신욱 현 대법관. 검찰 고위간부 출신으로 대법관을 지냈거나 현재 역임 중인 인사들이다.


    이런 법원·검찰 간의 인사 교류는 법조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50~60년대의 실정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검사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되더라도 그냥 ‘법조계 원로’ 자격이었지 ‘검찰 몫’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1964년 대검찰청 차장(고검장급)이던 주운화씨가 대법원판사에 임명된 것은 그 전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주씨는 법원과 검찰 간의 합의에 따라 검찰의 ‘대표선수’ 자격으로 대법원에 입성했습니다. 이 점에 관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죠. “1964년 법무장관 민복기와 검찰총장 신직수, 이 환상의 콤비는 ‘대법원이 전체 법조계를 대표하기 위해서 대법원 판사에 검찰 출신도 들어가야 한다’는 궤변을 내세워 마침내 대검 차장 출신의 주운화 등이 검찰 대표로 대법원 판사가 되는 길을 연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관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964년 주운화 대검 차장이 대법원판사에 임명되고 75년 나길조 광주고검장이 다시 대법원판사로 영입되면서 대법원에 최소 1명 이상의 검찰 출신 인사가 포진하는 관례가 성립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5공화국 때는 이게 2석으로 늘어나기도 했죠. 6·29 이후 법원 내부에선 양삼승 판사 같은 소장파를 중심으로 ‘이번 기회에 검찰에서 대법관을 충원하는 관행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강력히 저항했고, 대법원 수뇌부도 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6공의 첫 사법부 수장이었던 이일규 대법원장은 1988년 김주한 대검 감찰부장(검사장급)을 대법관에 제청했습니다. ‘검찰 몫 대법관’이 2석에서 1석으로 숫자만 줄어든 채 기어이 살아남은 것이죠. 김씨가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로도 법무연수원장(고검장급) 출신의 지창권 대법관(1994~2000년 재임), 서울고검장을 지낸 강신욱 대법관(2000년~현재)이 차례로 탄생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13자리 중 1석은 ‘검찰 몫’이란 게 사실상 ‘관습헌법’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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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안대희 서울고검장, 이종백 부산고검장, 홍경식 법무연수원장, 김희옥 법무부 차관. ‘대법관 1석 = 검찰 몫’이란 관행이 지켜진다면 이들 중 1명이 오는 7월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前 서울고검장)의 후임으로 대법원에 입성하게 된다.


    대법관 가운데 1~2명을 검찰 출신으로 채우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요? 이 관행이 박정희 정권 때 도입돼 전두환 정권 시절 한층 강화된 점을 감안하면 선뜻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사법부(법원) 통제를 위해 행정부(검찰) 관료를 ‘낙하산 인사’처럼 밀어 넣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당연히 제기됩니다. 검찰 출신 대법관의 ‘능력’도 검증돼야 할 과제입니다. 앞서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자리에 비전문가가 앉은 격”이란 양삼승 판사의 비판을 소개했지만, 실제로 대법원 안팎에선 ‘검찰 출신 인사는 대법관 직무를 수행하기엔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돕니다. 물론 이런 문제점들을 상쇄할 명분이 하나 있긴 합니다. 1964년 민복기 대법원장이 검찰에 ‘대법원행(行) 티켓’ 1장을 배정할 때 내세운 논리 - “대법원이 전체 법조계를 대표하려면 검찰 출신도 포함해야 한다” - 가 바로 그것이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가 시대적 요구인 요즘 결코 무시하기 힘든 주장임이 틀림없습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최근 “인물의 적격성을 따지기보다 ‘검찰 몫 배정’ 방식으로 고위검사를 대법관에 임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전체 대법관 중 검사 출신이 꼭 1명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검찰에 대법관 자리 하나가 자동 할당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뜻이 담겨있죠. 이런 맥락에서 참여연대는 오는 7월 퇴임하는 강신욱 대법관(검찰 출신) 등 대법관 5명의 후임자를 추천하며 전·현직 검사를 배제한 채 현직 판사 6명과 재야 변호사 1명만 후보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물론 현행 헌법상 대법관 후보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인 만큼 대법관 1석을 계속 ‘검찰 몫’으로 남겨둘지, 아니면 1988년 이후 검찰에 남은 단 한 장의 ‘대법원행(行) 티켓’마저 회수할지는 전적으로 그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관 1석 = 검찰 몫’이란 관행을 그대로 수용할지 여부에 법조계의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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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지법(왼쪽)과 인천지검. 인천의 법원·검찰청은 ‘법원이 오른쪽, 검찰청이 왼쪽’이라는 통상의 관행을 깬 것으로 유명하다. 인천 법조타운은 법원을 왼쪽, 검찰청을 오른쪽에 두고 있다.

 

      주안동에 있던 인천 법조타운이 지금의 학익동으로 옮겨간 것은 2002년의 일입니다. 그해 6월 법원 청사가 다 지어져 재판, 등기 등 업무를 보기 시작됐고 얼마 뒤엔 바로 옆의 검찰청 건물도 완공됐죠. (인천지검은 MBC 드라마 ‘아현동 마님’의 촬영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인천지법·지검이 들어선 부지는 인천구치소와 아주 가깝습니다. 1996년 조성된 경기도 평택의 법조타운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법원, 검찰청, 구치소가 한 장소에 모인 것입니다.

 

      6월2일 취재 때문에 인천지법을 찾았습니다. 회사 근처 용산역에서 동인천행 급행열차를 타고 주안역까지 가니 정말 빠르더군요. 주안역에서 학익동 법조타운까지는 걷기엔 좀 먼 거리입니다. 시내버스로 열 정거장 정도 될까요? 급행열차를 탄 덕분에 시간이 좀 남아서 한번 걸어가봤습니다. 맨 처음 눈에 띄는 건물은 인천구치소. 1997년 10월 지어진 지하 2층, 지상 12층의 현대식 건물입니다. 겉모습만 봐선 교정기관의 느낌이 전혀 안 들죠.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아늑한 환경은 ‘구치소·교도소=혐오시설’이란 선입관을 확 깨게 만듭니다.

 

      전국의 법조타운은 대개 법원이 오른쪽, 검찰청이 왼쪽에 있는 구조입니다. 이는 물론 나란히 서 있는 두 건물의 정문을 앞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죠. 아래 사진은 광진구 구의로에 있는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동부지검입니다. 왼쪽에 있는 게 검찰청, 오른쪽이 법원이죠. 우리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법원·검찰청의 배치가 거의 대부분 이렇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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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인천만 유별나게 법원이 왼쪽, 검찰청이 오른쪽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먼저 법조타운에 입주한 인천구치소 때문입니다. 부지의 특성상 ‘법원 오른쪽, 검찰청 왼쪽’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자면 구치소 바로 앞에 법원이 들어설 형편이었죠. 그런데 구치소는 법무부 기관입니다. 법원 내부에서 “사법부 소속인 법원이 행정부인 법무부 산하 시설과 붙어 있는 것은 보기 안 좋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통상의 관행을 깨고 법원이 왼쪽으로, 검찰청이 오른쪽으로 간 것입니다. 처음 인천 법조타운을 찾는 방문객은 여타 도시와 사뭇 다른 법원·검찰청의 배치에 의아함을 표시하죠.

 

      인천지법 관계자에게 이 문제에 관해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꼭 법원은 오른쪽, 검찰청은 왼쪽에 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사실 법원·검찰청이 한 곳에 있을 필요도 없어.”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비춰볼 때 법원 청사가 검찰청, 구치소 등 행정부 건물과 꼭 가까워야 하느냐는 반론으로 들립니다. 이웃 일본만 해도 우리처럼 법원·검찰청을 나란히 배치하진 않고 좀 떼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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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인천지검, 오른쪽이 인천구치소다. 먼저 들어선 인천구치소 때문에 법원·검찰청의 배치가 바뀌었다. 법원이 ‘법무부 산하 기관들끼리 한데 모이는 게 맞다’고 주장함에 따라 법원이 왼쪽, 검찰청이 오른쪽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법원, 검찰청, 구치소가 서로 가까우면 여러 모로 편리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구치소에 수감된 미결수와 그를 찾는 면회자들에게 좋습니다. 이들은 아직 수사나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수시로 검찰청, 법원을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천의 경우 구치소에서 검찰청, 법원까지 ‘지하통로’가 뚫려 있습니다. 덕분에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외부에 공개될 때 생기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습니다. 호송을 맡은 교도관들 입장에서도 이동 거리가 짧으니 안전 확보가 훨씬 쉽겠죠.

 

      법무부는 2006년 11월 개정 ‘법무시설기준규칙’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검찰·법원청사를 신축하거나 이전할 때 부지 선정과 매입 단계에서부터 구치소 병설을 감안해 시행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당장 광진구에서 송파구로 이전하는 서울동부지법·동부지검에 이 규칙이 적용될 듯 합니다. 송파 문정지구 법조타운 조성계획에 따르면 법원, 검찰청과 나란히 구치소도 들어서는 것으로 돼있습니다. 당초 일부 주민은 구치소 건립에 반대했으나 송파구청 측이 인천의 사례를 들어 이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입니다. 앞으로 생겨나는 모든 법조타운이 법원·검찰청·구치소의 유기적 연결로 수사·재판 당사자들에게 실질적 편의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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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광진구에 있는 서울동부지법·지검이 옮겨갈 송파 문정지구 법조타운 계획도. 법원, 검찰청과 함께 구치소도 들어서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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