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제국


    최근 주요 방송사의 메인 드라마가 일제히 검사를 ‘비열한 배신자’, ‘출세 지상주의자’로 묘사하고 나서 눈길을 끕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KBS, 2007년), ‘아현동마님’(MBC, 2007∼2008년), ‘신의 저울’(SBS, 2008년) 등 검사를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뒤라 그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일고 있죠.

    MBC가 ‘밥줘’ 후속으로 내보내는 일일드라마 ‘살맛납니다’는 검사 임용을 앞둔 기욱(이민우)이 7년간 사귄 여자친구 민수(김유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기욱은 “너는 여자도 아니다. 먼저 가슴 확대수술부터 받아라”고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연애 위자료’라며 500만원을 건네는 등 패륜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여성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죠.


    10월27일 방영분에서 “곧 검사 사위를 본다”며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던 민수 어머니 풍자(고두심)는 딸이 “이제 나 필요없대. 자기한테 날개를 달아줄 여자가 필요하대”라고 말하자 격분합니다. 28일엔 기욱을 찾아간 풍자가 “어떻게 내 딸한테 이럴 수 있느냐”며 기욱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영됐죠.


    KBS가 ‘솔약국집 아들들’ 후속으로 내보내는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도 첫회에 초임검사 왕재수(고세원)가 5년간 사귄 여자친구 주어영(오지은)과 헤어지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왕재수는 “너무 남자에게 집착하는 것도 병이다. 정신병원에나 가봐라”고 비아냥거리다가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경찰서 강력팀장 김이상(이준혁)에게 붙잡혀 얼굴을 얻어맞았죠.


    두 드라마가 다 초입 단계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연애, 이별 같은 검사의 ‘사생활’만 다루는 것에 그치진 않을 전망입니다. ‘수상한 삼형제’의 경우 왕재수가 복수를 위해 김이상의 신원조사를 지시하는가 하면 일부러 김이상이 속한 경찰서를 지휘하는 부서로 발령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내보냈습니다. 은근슬쩍 검사의 ‘직무’까지 건드리고 있는 셈이죠.


    일각에선 검찰의 ‘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수사와 기소에서 비롯된 방송작가들의 반감이 은연중에 작품에 녹아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드라마 작가들도 ‘PD수첩’ 같은 교양 프로그램 작가들과 함께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죠. ‘조두순 사건’의 법률 적용 오류와 항소 포기, 효성비자금 부실수사 논란 등으로 가뜩이나 곤경에 처한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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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가 경찰관에게 얻어맞았다. 주말 오후 전파를 타는 KBS 2TV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다. 10월17일 방영된 첫회에서 주인공인 경찰서 강력팀장 김이상(이준혁)은 갓 임용된 초임검사 왕재수(고세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때렸다. 서로 신분을 아는 상황에서 왕재수가 “경찰이 감히 검사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김이상은 소속 경찰서와 보직이 적힌 명함까지 건네며 “억울하면 진단서를 끊어 찾아오라”고 비웃었다.   


    작가가 붙인 등장인물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경찰대학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강력팀을 이끄는 이상적인 주인공의 이름은 김이상이다. 반면 사시 공부할 때와 사법연수원 시절을 포함해 5년간 자신을 뒷바라지한 여자친구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검사 이름은 왕재수다. 극중 왕재수는 “헤어질 수 없다”는 여자친구에게 “남자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도 정신병이다. 정신병원에나 가보라”는 악담을 퍼붓고 줄행랑을 치다가 그만 김이상에게 붙잡힌다. 김이상은 “이건 저 여자 대신”이라며 왕재수에게 주먹을 날린다.


    경험이 부족한 초임검사가 베테랑 경찰관에게 얻어맞는 드라마 속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력범죄 특별수사본부를 무대로 한 MBC의 2007년 드라마 ‘히트’에서도 그랬다. 김재윤(하정우)은 검사 임용을 하루 앞두고 불법 카지노에 놀러갔다가 조직폭력배 뒤를 쫓는 강력반 경위 차수경(고현정)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이후 연쇄살인범 검거를 위한 특별수사본부에 파견된 김재윤은 차수경에게 또 뺨을 얻어맞는 신세가 된다.



    ‘히트’가 방영될 당시 검찰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대검찰청 부대변인이던 김진숙 검사(현 사법연수원 교수)는 검찰 내부소식지 ‘뉴스프로스’에 기고한 글에서 “검사가 경찰에게 얻어맞거나 업무 면에서 경찰 지시를 받는 장면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며 “아마도 현실을 뒤바꾸어 극적 카타르시스를 얻어 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고 비판했다. 최근 ‘수상한 삼형제’에서 경찰이 멋있게, 검사가 못나게 나오자 벌써 시청자 게시판이 들끓고 있다. “멋진 경찰관이 주인공이어서 좋다”는 반응부터 “검사와 경찰의 관계가 실제와 너무 다르다”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조만간 ‘히트’ 때처럼 검찰이 정색을 하고 대응에 나설 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보면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검사는 ‘정의의 화신’으로 그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화 ‘검사와 여선생’과 ‘공공의 적 2’, SBS 드라마 ‘모래시계’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들 작품을 보며 “커서 검사가 돼 우리 사회에 정의를 구현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영화·드라마 속 검사의 캐릭터가 한심하고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아예 대놓고 등장인물 이름을 ‘왕재수’라고 붙일 지경에 이르렀다. 대검찰청이 아무리 방송작가들을 초청해 홍보해도 별 효과가 없는 듯 하다.


    드라마 속 검사가 푸대접을 받는 모습은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에서 검찰은 법률 적용을 잘못하고 항소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봐주기’, ‘부실수사’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몇몇 의원은 “경찰보다 못한 검찰”이라고 이귀남 장관을 질책했다. 검찰의 심기일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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